뉴올리언스에서 시간 여력이 생겨 인근의 Baton Rouge라는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뉴올리언스에서 1시간30분경 거리에 위치한 중소 도시로 생각했지만 이곳이 루이지애나주의 주도(Capital)이다.
도심은 조용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으나 도시 좌측을 흐르는 미시시피강으로 인하여 풍성한 여유와 낭만을 가져다 준다.
이 곳에는 루이지애나주 주정부 청사겸 의회(Capitol) 건물이 우뚝솟은 빌딩으로 웅장하게 세워져 있으며 꼭대기 전망대가 무료로 개방된다고 한다. 우리는 늦게 도착하여 서둘러 시간내 도착하여 1층을 통해 입장하려 했지만 먼저 도착했던 사람들이 돌아 나오면서 앨리베이트 운행시간에 이미 늦었다고 하여 다른 날 와야 된다고 한다.
아쉽지만 근처를 둘러 보다가 세련된 도서관으로 가서 도서관 내부를 둘러 보았다.

Baton Rouge로 가는 길.



주정부청사, 의회 건물






도서관(Liabrary)





도서관에서 보이는 옆 예전의 주정부청사/의회 건물


흑인 인권운동의 발상지가 뉴올리언스와 인근도시인것을 나타내는 당시 사진들.


✊ Baton Rouge의 흑인 인권운동 역사
루이지애나 주도인 배턴루지는 미국 남부의 인종 분리 역사 속에서 초기 버스 보이콧 운동의 출발점 중 하나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1950년대 민권운동(Movement for Civil Rights)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 1953년 배턴루지 버스 보이콧
📅 1953년 6월
배턴루지에서는 흑인 승객이 시내버스 승객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당시 버스 좌석은 엄격히 인종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항의하여 지역 흑인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핵심 인물
- T. J. Jemison
→ 배턴루지의 목사이자 보이콧을 조직한 지도자
운동 방식
- 약 8일간 버스 탑승 거부
- 교회 중심으로 카풀 시스템(대체 교통망) 운영
- 경제적 압박을 통해 시 정부와 협상
결과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 버스 앞좌석 일부를 흑인에게 개방
✔️ 부분적 좌석 분리 완화
👉 이 운동은 미국 최초의 성공적인 버스 보이콧 사례로 평가됩니다.
2️⃣ 몽고메리 운동에 미친 영향
1953년 배턴루지 보이콧은
2년 뒤 일어난 **Montgomery 버스 보이콧(1955–56)**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 카풀 시스템 운영 방식이 그대로 참고됨
- 몽고메리 운동은 **Martin Luther King Jr.**를 전국적 지도자로 부상시킴
- 배턴루지 사례는 남부 흑인 교회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됨
3️⃣ 1960~70년대 시민권 운동
배턴루지 역시 다른 남부 도시처럼:
- 학교 통합 문제
- 투표권 확대 운동
- 공공시설 인종차별 철폐 요구
등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특히 **Southern University**는
흑인 학생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4️⃣ 현대적 의미
배턴루지의 인권운동은:
- 남부 민권운동의 “숨겨진 시작점”
- 교회 중심 조직력의 중요성
- 경제적 보이콧 전략의 성공 사례
로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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